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2014년 봄. 무심코 나갔던 ‘집밥’모임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모임의 주제는 ‘나도 짝을 찾고 싶다!’ 당시 막 유행하기 시작한 소셜네트워킹 모임이었는데 나가보니 25:25 남녀 단체미팅이었다. ‘설마 진짜 커플이 되겠어?’ 생각했던 나는 예상과 달리 이날의 1호 커플이 되었고 밝고 유쾌해서 끌렸던 그 남자는 다음 날 시간 어떠냐며 곧바로 데이트 신청을 했다.

중간중간 찾아오는 어색함 속에서도 봄날 헤이리에서 우리의 첫 데이트는 순조로웠던 것 같다. 난데없이 그가 꿈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밥을 먹고 들어간 카페에서 그는 갑자기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꿈이라… 회사 다니며 쳇바퀴 돌 듯 살던 내게 꿈이란 단어는 너무 오랜만에 마주한 낯선 말이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꿈이 세계여행이에요.”

“네? 세계여행이요?”

‘세계여행?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 누구나 세계여행 가고 싶지. 그런데 돈은? 다녀온 뒤의 삶은?’

진짜 멋진 꿈이라며 호응했지만, 속세에 젖은 나는 현실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는 2년 전부터 적금을 들었고 곧 만기가 되면 떠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남자를 계속 만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됐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실행하는 사람을 만난 덕분에 나는 내 인생에 전혀 없던 세계여행이란 선택지를 받게 되었다. 물론 그 선택지에 ‘예스’라고 대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무렵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서른을 넘기고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의 난이도는 높아졌고 사랑도 일도 쉽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물음표는 계속 커져만 갔다.

연애하는 중에도 “세계여행은 아니야.”라고 말하던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그 모험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을 두드리는 벅찬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꿈틀거렸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길고 긴 인생인데 1년쯤은 여행만 하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아니 인생은 찰나와 같이 짧으니까 더욱 무모함을 감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날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필요한 여행경비를 1년반 동안 더 모았고 불필요한 결혼 비용은 줄이려 노력했다. 그렇게 우리는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서 길고 긴 신혼여행을 시작했다.

2015년 11월 10일 인천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