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

발리 우붓에 살고 있는 종은, 주영 부부의 이야기

세계여행 못지않게 ‘한달살이’가 유행이다. 눈에 담기만 하는 여행이 아니라 좀 더 여유롭게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동이 적고 현지 문화를 깊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이 여행 트렌드의 장점이다. 특히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일수록 이 새로운 여행 방식에 관심이 높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자 아이들과 함께 발리 우붓(Ubud)으로 떠난 개발자 이종은, 기획자 오주영 부부는 한달살이 이후 어느덧 1년 반 째 우부디언(Ubudian-우붓에 사는 외국인을 이르는 말)으로 살고 있다. 힐링 에너지 가득한 우붓에서 이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발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캄보자꽃

우붓으로 오기까지, 그리고 시행착오

Q. 어떻게 발리 우붓으로 오게 되었나?

주영 : 마침 전세 기간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직업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니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종은은 그런 것을 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코워킹스페이스가 유행인 이 시점에 다른 나라 개발자들과 일해 보는 게 어떠냐고 종은을 꼬드겼다. 코워킹스페이스로 유명한 베를린과 우붓을 놓고 고민하다가 먼저 우붓에 한 달 살아보기로 했다.

종은 : 아이들 때문에 도시보다 시골에 살고 싶었다. 한국에서 너무 바빴기 때문에 사실 우붓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고 왔다. 돈 버는 일을 줄이고 우리 일을 하자는 주영의 말에 혹했다. 어쨌든 서울에서 살려면 전세금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목돈이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이곳은 여유가 있으니 한 달 살아보고 괜찮으면 1년을 더 살기로 했다. 1년 살 때는 돈 버는 일을 줄이고 우리 일을 더 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붓살이를 시작했다.

Q. 교통 문제도 그렇고 인터넷 속도도 그렇고 한국에 비하면 우붓은 제약이 많은 편인데 특히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불편하지 않았나?

주영 : 우붓에 와서 처음 2주는 “아… 이건 잘못한 선택이다”라고 생각했다. 여행책에서 본 잘란-잘란(jalan-jalan)이란 말에 환상을 갖은 게 문제였다. 인도네시아어로 잘란-잘란은 산책하다라는 뜻인데 실제 우붓은 길이 좁아서 산책하기 힘들다. 특히 우린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오토바이 이용도 어렵고 차가 꼭 필요했다.

- 한달살이 중에 2주면 절반을 후회한 것 아닌가! (웃음)

종은 : 난 3주였다. (웃음)

- 그만큼 시행착오가 많았던 것 같다.

주영 : 한달살이 이후 더 살아보기로 마음먹고서 지난 1년 전체가 시행착오였다.

종은 : 처음에는 벌레가 너무 적응이 안 됐다. 개미, 거미, 난생처음 보는 벌레에 도마뱀까지. 한 달 살 때는 몰랐는데 집 한 채를 빌려서 관리하다 보니 벌레 때문에 괴로웠다. 우기에 지붕에서 비가 새기도 하고 집 관리가 쉽지 않다. 한국에선 걸리기도 힘든 아메바성이질과 장티푸스로 아이들이 아프기도 했고, 무엇보다 운전이 쉽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달리 왼쪽 차선으로 차가 다니기 때문에 처음엔 운전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주영과 긴장하는 코드가 다르다 보니 긴장이 멈추는 새가 없었다. 그런 생활이 거의 6개월을 갔다.

종은, 주영네 가족의 보금자리. 예쁜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집이다

주영 : 6개월 동안 신혼 때만큼 싸웠다. 가장 힘들었던, 시행착오라면 시행착오일 수 있는 것이 목표를 세우고 온 것이다. 무소유로 살겠다, 디지털노마드로 살겠다, 자체서비스를 만들겠다, 목표가 너무 많았다. 거기다 아이까지 봐야 하니 더 힘들었다. 목표를 너무 크게 잡았고 이상도 너무 컸다. 그리고 그것과 다른 나 자신을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일이 내 생각만큼 안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른 시도를 해보되 그 결과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경험을 했더라면 고생을 덜 했을 텐데 그런 경험이 둘 다 처음이니 쉽지 않았다.

Q. 그런데도 한달살이 후에 더 살아보자고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주영 : 현지인들이 사람을 보고 웃는 게 좋았다. 서울에서는 애들 데리고 다니면 민폐니까 그렇지 못한 상황이 많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아이들을 보면 웃어주고 급할 것 없이 살아간다. 퇴사 후에 치열함을 줄이고 긴장을 많이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이곳 사람들을 보니 내가 아직도 긴장하며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의 나는 긴장을 많이 하고 많이 욕심 부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힘들었다. 남한테 피해 주기 싫으니까 한국에서는 애들을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우붓에서 좀 더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이유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어서 좋았다.

종은 : 코워킹스페이스가 가까워서 더 살게 된 것도 있지만, 내가 느낀 것은 이곳에서 나 혼자만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뭔가를 빨리 달성해야 하는 삶에 익숙하다가 이곳에선 나 혼자만 급하다는 것을 한달살이 마지막 1주일을 남기고 깨달았다.

주영 : 1주일 남은 시점에 미술관에 갔는데 입장권으로 미술관 카페에서 주스를 마실 수 있었다. 카페 정자에서 가족이 다 같이 주스를 마시는데 그날따라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었다. 그때 종은이 주변 논 풍경을 바라보며 “와~ 이렇게 멍 때려도 되는구나. 너무 좋다. 여기서 좀 살까?”라는 말을 하더라. 속으로 “앗싸! 내 계획대로 됐어!”라고 생각했다.

종은 : 한달살이 끝나고 잠시 한국에 돌아간 첫날, 집 근처 신도림역을 지나갔다. 그때 마치 영화처럼 나 혼자만 슬로우모션으로 걸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참 어색했다. 우붓에서는 나만 저들처럼 바빴는데 한국에서는 반대로 느끼는 것 보니 우붓이 내게 준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붓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

Q.디지털 노마드로 우붓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가? 우붓 코워킹스페이스는 한국과 많이 다른가?

종은 :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하며 아이들도 돌봐야 하기에 짧게 집중해서 작업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비즈센터를 이용했다. 일은 잘됐는데 한 달에 100만 원이 들었다. 후배랑 나눠서 50만 원씩 냈는데도 비용이 부담돼서 결국 다른 곳을 찾게 됐다. 우붓의 코워킹 스페이스 중 하나인 아웃포스트(Outpost)는 한 달 이용료가 200불 남짓이다. 또 짧게 집중해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이동하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도 중요한데 아웃포스트는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음식을 주문하면 내 자리에서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주영 : 아웃포스트 안에서 음식을 팔기도 하지만 우붓 전체 레스토랑 메뉴를 갖고 있어서 카운터에 말하면 대신 주문해주고 내 자리로 갖다 준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는 나에겐 큰 도움이 됐다.

아웃포스트 내부. 일하는 자리에서 밥도 먹을 수 있다

종은 : 2층 테라스로 올라가 좋은 경치를 보며 일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주영 : 코워킹 스페이스도 결국 부동산 이슈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빌딩 숲 사이 햇빛도 잘 안 들어오는 작은 책상에서 일했는데, 여기는 일단 규모 자체도 크고 좀 더 넓은 공간에서 파란 하늘을 보며 여유롭게 일하는 느낌이다. 여기도 매주 열리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함께 뭔가를 하기보다 각자 일하는 분위기다. 종은이 초기에 힘들었을 것이다. 이야기 나눌 개발자들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왔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고, 있어도 헤드폰 끼고 자기 개발만 하고 있다. 혼자 개발하려니 외롭다는 말을 종종 한다.

아웃포스트 2층. 1층보다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다

테라스로 나가 멋진 뷰를 보며 일할 수도 있다

Q.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일은 잘 되고 있나?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지 궁금하다.

종은 : 첫째 때 아이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관리도 안 되고 다시 안 보게 되더라. 안 찍은 날은 괜한 의무감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둘째 낳고 하루 한 번 아이 얼굴을 찍는 앱을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었다. 플립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했는데, 아이 얼굴을 매일 한 장씩 찍으면 100일이 됐을 때 이걸 활용해서 얼굴이 변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주는 서비스다. 여기 와서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완성되어 앱스토어에 Yobaby라는 앱으로 출시됐다.)

주영 : 사업은 환경이나 운이 받쳐줘야 하고 우리처럼 자원이 없는 상태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성공해야 한다기보다 레퍼런스를 쌓는다는 생각으로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있다. 레퍼런스가 있고, 없고에 따라 외주 단가가 다르기도 하고. 실패하더라도 레퍼런스 하나를 쌓았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작업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속도가 안 나는 게 좀 문제다. 속도가 안 나니까 마치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만 예전과 달리 “아니야. 우리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한다.

Q. 디지털 노마드의 노마드는 이동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다음 목적지도 있나?

종은 : 우붓에 와서 노마드의 개념에 대해 좀 생각하게 되었다. 원래 유목민은 먹을 게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나. 그런데 디지털 노마드는 먹을 게 떨어져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는 계속 자국에 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옛 노마드의 개념과 차이가 있다. 이동하는 이유는 자기 나라에서 누리지 못하는 환경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전세계 코워킹 스페이스에 대한 글을 읽으면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곳에서 커뮤니케이션하고 네트워킹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이곳에서 일해보니 각자 자기 일 하기 바쁘다.

주영 : 이곳에서 디지털 노마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여행하면서 자기 서비스를 마케팅하는 친구들, 다른 하나는 자국에 소속을 두고 일하는 경우다. 두 번째 경우는 짧은 시간에 집중하면서 일한다. 할당된 일을 빨리 끝내고 자기 시간을 누리는 거다. 유목민은 사실 때가 되면 떠나지 않나. 그런데 지금의 노마드는 때가 돼도 떠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인지라 결국 환경이 바뀌면 적응해야 하고, 의식주를 알아보고 이런 것을 빠르게 처리하고 바꾸는 게 쉽지 않다.

- 요즘 디지털 노마드는 여행이 주목적이고, 여행하면서 약간의 돈벌이를 하는 개념인 것 같다.

주영 : 처음에는 진짜 1년 우붓에 살고 그다음에 베를린으로 갔다가 스페인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아이가 학교에 다녀야 하니까.

종은 : 우리는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거점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우부디언으로 산다는 것

Q. 아이들을 한국의 교육시스템보다 좀 더 자유로운 우붓에서 키우는 것은 참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우붓에서 사는 게 아이들 교육에도 좋다고 생각하나?

종은 : 9년 전, 우붓에 정착한 구름, 바람 가족과 우붓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우붓에 모인 다양한 인종만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에선 아이들이 선입견 없이 자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이곳은 ‘동성애’라는 개념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 소수자도 이성애자와 다르지 않고 평등하다는 것을 직접 보면서 접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이들은 미디어나 광고에 많이 노출된다. 날씬한 여자는 신체가 드러나는 옷을 입어도 괜찮고 뚱뚱한 여자는 놀림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미디어를 통해 접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붓에서는 미디어에 노출되는 상황도 적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이 참 자유롭다. 체형에 상관없이 자신이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사람들 시선을 개의치 않는다.

주영 : 다양성에 대해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이미 다양성을 보고 자라는 거다. 이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타인과 내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걸 일찍 알았다면 삶이 더 확장되었을 것 같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문화 속에서 자라다 보니까 나에 대한 강박관념도 있었고, 타인과의 갈등 속에서도 “아 저럴 수도 있겠구나”가 아니라 “저 사람 왜 저래?”가 되면서 힘든 건 결국 나였다.

8살 제이와 5살 주오. 언제봐도 밝은 어린이들 :)

Q. 우붓에 살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나?

종은 : 학교가 끝나는 3시까지 아이들을 직접 데리러 가야 하는 것도 그렇고 직접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 아빠로서 육아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할 것 같다.

종은 : 한국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여전히 바쁘지만, 회사 다니는 아빠들보다 육아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축구에 비유하면 예전에 나는 공격수라고 생각했는데 공격형 미드필더 정도였던 거다. 스트라이커가 있으니까 골을 못 넣어도 내 책임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에선 투탑이 된 느낌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여전히 엄마 손이 더 많이 가고 주영은 투탑까지는 아니라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더 많아졌지만 일하는 시간이 확보가 안 돼 고민이기도 했다.

Q. 엄마 입장은 어떤가?

주영 : 얼마 전에 예전 팀장님으로부터 다시 돌아올 생각 없냐고 연락이 왔다. 그때 참 많이 고민했다. 분명히 예전보다 훨씬 더 좋은 지위와 연봉이 주어질 걸 알면서도 못하겠더라. 돌아가서 벌어질 일들이 너무 빤히 눈에 보였다. 회사 다닐 때는 아이들 때문에 계속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했고 미안하다고 얘기해야 했다. 그 상황을 또 겪을 생각을 하니 좋은 제안임에도 선뜻 “돌아갈게요”란 말이 안 나왔다. 이런 모든 상황을 종합했을 때 아직은 아이들과 우붓에 사는 장점이 더 큰 것 같다.

Q. 육아하는 엄마, 아빠의 애환이 느껴진다. 직접 두 분의 생활을 지켜봤을 때, 이미 아이들에게 충분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 혹은 자신만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두 분 만의 육아 철학이 있다면?

종은 : 아이들의 성격과 마음은 어릴 때는 연하고 클수록 견고해진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성격이나 삶에 대한 기본자세가 형성된다고 생각하면 어릴수록 부모랑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성장 후에는 아이가 알아서 해야 하지만 말이다. 우붓 생활의 어려움도 있지만 지금 이 시기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못 보내는 아빠들은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는 죄책감이 들지 않나. 그러다 보니 엄청 쿨한 아빠가 된다. 하지만 실제 아빠는 찌질할 수도 있고 쪼잔하고 예민하고 까칠한 면이 분명 있다. 애들은 아빠의 본 모습을 모르고 자라는 거다. 나중에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 어느 날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보고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 아이에게 나의 모습을 솔직히 보여주면 아이가 그 모습을 좋아하진 않더라도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솔직한 아빠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이 좋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삶

Q. 어쨌든 우붓의 삶은 한국보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시간도 좀 더 여유롭게 흐르는 느낌이다.

종은 : 한달살이 할 때 이런 삶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다. 진짜 바쁜 날이었는데 아이들은 수영장에 가고 싶어 했다. 그날 아웃포스트로 출근하면서 이곳과 연계된 옆 리조트 수영장에 아이들을 데려다주었다. 아이들은 물놀이하고 나는 일하고, 점심으로 피자 주문해서 같이 먹고 다시 일하다가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집에 온 날이었다. 서울에서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서울에선 수영복 입고 출발하기도 힘들다. 여긴 항상 더운 기후이기도 하고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 문화 때문에 아이들을 수영복 입혀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날, 일상 속에서 느끼는 특별함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침부터 작정하고 어디를 가야 특별한 하루였는데, 여기는 일상 사이사이에 특별한 뭔가를 끼워 넣을 수 있다. 회사에 다니지 않고 있기에 가능하기도 하고 우붓이기에 가능하기도 하다.

- 소소하면서도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일상의 특별함이 보인다.

주영 :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나라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갔어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붓이 주는 지리적, 문화적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붓은 발리 남부의 번화한 관광지와도 확실히 다르다. 우붓에 모여 사는 외국인들을 농담 삼아 비주류, 아웃사이더라고 지칭하는데 이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에너지와 문화가 있다.

Q. 우붓에서 계속 살게 될까?

주영 : 여기의 삶이 힘들어지면 언제든지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종은 : 멀리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통제가 안 되고 변수가 너무 많다. 적응하는 과정이 고생스럽긴 하지만 “여긴 못 살겠다”고 한국에 가더라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큰 추억이 될 것 같다. 많은 벌레에 시달렸던 기억 등등. (웃음)


‘논뷰’를 배경으로 가족사진 한 컷

이종은 (37) 프리랜서 개발자이자 제이, 주오 두 아이의 아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지금은 발리 우붓에서 가족과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중. https://medium.com/@yomybaby

오주영 (37) 프리랜서 IT 기획자이자 제이, 주오의 엄마. 남편과 부부개발단 YO STUDIO를 꾸리고 있다. 일하며 육아하며 우붓에서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 https://medium.com/@jooyoungoh_1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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